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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 , 영화 [사도] 줄거리, 관전포인트, 느낀점

by reviewmonster1 2025.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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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영화포스터
사도

 

 

1. 줄거리

 

1754년, 영조의 후궁 영빈 이 씨가 아들을 낳았다. 수년 전 장남 효장세자를 잃은 영조에게 영빈이 낳은 왕자는 큰 기쁨이자 자랑이었다. 당시 영조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왕자는 곧 왕세자의 자리에 올랐다. 훗날 자신의 뒤를 이어 조선의 왕이 될 세자에게, 왕이 큰 기대를 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들을 향한 지나친 사랑과 관심은 비극의 서막이 되고 만다. 세자가 자라고 점차 어른이 되어가면서, 두 부자의 갈등은 조금씩 짙어지기 시작한다.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영화 사도는 역사적인 사실과 과정들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시점으로 연출하였다.
비가 심하게 내리던 날, 후원의 무덤에서 나온 세자(유아인)는 검을 들고 경희궁을 향하였고, 영조의 거쳐에 도착해 문밖으로 비치는 영조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시작된다. 

 

첫째 날
임오년 7월 4일 영빈은(송강호)를 찾아가 경희궁을 찾아왔었던 세자를 대처분 할 것을 요청하면서도 자비를 베풀기를 간청한다. 영조는 경화문을 통과하여 창덕궁에 도착하였고 무릎을 꿇고 있는 세자에게 용포를 벗으라 명한 후 사제의 후원에서 가져온 관짝과 그 안에 든 무기를 언급하며 세자에게 자결하라고 명한다.

둘째 날
영조는 세자를 모시던 신하들을 잡아들인 뒤 세자를 평민으로 강등하라는 교지를 쓰라고 명하나 승지들이 거부하였고 이에 영조가 직접 교지를 작성한다. 김귀주는 세자에게 사약을 내리면 되지 않냐는 의견을 밝히지만 사약은 죄인들에게 내리는 것으로 세자가 사약을 받는다면 공식적인 죄인이 되며 영조뿐 아니라 세손까지 역적이 되기에 사약을 내리지 못한다. 

18년 전 세자가 10살이 되던 해. 세자는 혜경궁 홍 씨와 혼례를 올린다. 왕실의 어르신들은 혜경궁 홍씨 에게 궁중 예절과 성격이 예민한 영조를 대할 때의 유의 사항을 알려주었고, 세자는 청나라 황제가 가례 선물로 보낸 강아지를 받는다. 

셋째 날
뒤주 안에서 심신이 약해진 세자는 수많은 지네들이 뒤주로 들어오는 환상을 본 후, 뒤주를 부수고 후원 연 못에 몸을 던졌고 사약을 내려 빨리 자신을 죽여 달라며 광분하며 소리친다. 이 소식을 들은 영조는 세자를 다시 뒤주에 가두라고 명한다. 이때, 혜경궁 홍 씨의 아버지이자 사도의 장인 홍봉한(박원상)은 훗날을 생각하며 버티라며 청룡의 그림이 있는 부채를 넣어준다. 

 

13년 전 세자가 15살 되던 해에 영조는 세자와 함께 종묘를 걷다가 보위를 전위할 의사를 밝힌다. 그러나 세자와 신하들이 모두 반대하자 영조는 대리청정하는 것으로 타협을 하게 된다. 세자의 신하들은 과거 대리청정의 예를 들며 세자에게 조언해 주었고, 세자는 영조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균역법과 관련하여 세자는 당당하고 논리적인 모습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지만, 영조는 자신이 세웠던 탕평을 하루 만에 무너뜨렸다면서 세자를 질책한다. 영조는 매번 세자의 정책을 못마땅해하며 정책을 뒤집어 버리고, 세자에게 중요한 건 자신에게 의견을 구하라고 명한다.

하지만, 세자가 영조에게 의견을 구하면 대리청정한 이유가 없다면서 또다시 세자를 질책한다. 어떤 것을 하여도 영조에게 질책을 받다 보니 사도는 점점 소심해졌고 신하들 앞에서 영조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세자로서의 위신도 점점 무너져가고 있었다. 

넷째 날
한 여름에 좁은 뒤주에 갇혀 있던 세자는 극심한 갈증으로 물을 가져오라고 소리쳤고, 뒤주를 지키던 병사 들은 뒤주가 말랐다는 명분으로 뒤주에 물을 끼얹는다. 뒤주의 틈으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던 세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청룡 부채에 소변을 본 후 받아 마셨는데, 그 후 부채가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던 날 자신이 그려 준 청룡의 그림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대성 통곡한다. 

10년 전 세자가 18살 되던 해에 세자는 태몽에 나온 청룡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며 혜경궁 홍 씨가 출산하려는 아이가 아들일 것이라 장담한다. 그 뒤에 정말 아들이 출산하였고 왕실 사람들은 기뻐한다. 세자의 장인 홍봉한은 세자가 그린 청룡 그림으로 부채를 만들어 세손이 왕이 되면 바치자며 세자에게 그림을 받아 간다. 

세손이 100일이 되던 날 세자는 세손과 혜경궁 홍 씨, 영빈 이 씨와 함께 영조에게 문안인사를 갔으나, 영조는 아이를 잠시 본 후 데려가라며 시큰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빈 이 씨가 영조에게 중전의 환갑에 대해 물었는데 옆에 있던 소원 문 씨(박소담)가 무례한 발언을 하였고, 이를 전해 들은 인원왕후는 문 씨를 불러 호이초 리를 때린다. 

이 소식을 들은 영조가 인원왕후를 찾아와 따졌고, 인원왕후와 갈등을 일으키다 화가 난 영조는 세자에게 보위를 넘기겠다고 윤허해 달라고 소리린다. 이에 화가 난 인원왕후는 이를 윤허하였고 영조는 궁을 떠나 별궁으로 가버린다. 세자는 추운 겨울날 밖에서 윤허를 거두어 달라며 밖에서 요지부동하였고, 영조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고 마음먹었던 인원왕후는 결국 세자만 고통받는 것을 깨닫고는 윤허를 거두고 숨을 거둔다. 

궁으로 돌아온 영조는 인원왕후의 죽음까지 세자를 탓하였고 이에 세자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기생을 부르고 술을 마시는 등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자는 공부도 대리청정도 하지 않으며 방황하였 으며 영조에게 대들기까지 하자 영조는 더욱 분노하였고 영조와 세자의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다섯째 날
뒤주에 갇힌 세자를 풀어주지 않자 혜경궁 홍 씨와 영빈 이 씨, 홍봉한은 세손을 보호하려 하지만 묘수가 없고 다들 영조를 두려워하기만 한다. 

5년 전 세자가 새로 중전이 된 정순왕후에게 문안인사를 올리지 않자 어머니 영빈 이 씨마저 세자를 나무라였고, 혜경궁 홍 씨는 무덤에서 굿을 하고 있는 세자를 찾아 중전에게 문안 인사를 드려야 한다며 청을 하보니 다. 결국, 정순왕후에게 문안 인사를 하겠다고 약조한 세자는 자신에게 맞는 용포가 없다며 애꽃은 내시의 목을 벤 뒤, 내시의 목을 들고 일가족 앞에 나타납니다. 

여섯째 날
군관들이 세자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뒤주를 흔들자 세자는 어지러우니 흔들지 말라며 생사를 알린다.
세손은 세손빈과 함께 물을 가지고 뒤주를 찾아와 며느리가 물을 가져왔다고 소리쳤고, 이 소리를 들은 세자는 뒤주 안에서 슬퍼한다. 영조가 나타나 이게 무슨 소란이냐며 소리치자 세손은 아비에게 물 한잔 드릴 수 없냐며 통곡한다.

1년 전 세자가 29살이 되고 세손이 9살이 되던 해 영조는 학문에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세손을 보며 기뻐하였고, 세자는 데려가지 않은 숙종의 능행길에 세손을 데려가는 등 총애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자는 영조의 총애를 받는 세손에게 공부가 좋냐고 물어보았고, 세손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지만 할아버지 영조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쓴다는 말을 한다. 이 말에 세자는 세손의 대한 연민으로 흔들린다. 이를 계기로 세자는 세손과 세손빈에게 따듯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조는 세손에게 보위를 물려줄 생각으로 세자를 가르쳤던 신하들에게 세자를 패하라는 상소를 올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다들 거부하자 영조는 세자를 잘 못 가르친 스승들에게 책임이 있다며 상소를 올리라는 어명을 내린다. 이에 이천은 영조에게 세자를 위하는 상소를 올린 후 자결하였고, 세자의 신하들은 세자에게 다른 신하들의 목숨을 위해서라도 공부하는 모습이라도 보여달라 하지만 세자는 거절한다

세자는 환갑이 한참 지났음에도 잔치를 열지 못했던 어머니 영빈 이 씨의 환갑잔치를 열어주었고, 영빈에게 중전의 대례복을 입힌 후 가족들에게 중전에게만 올리는 사배를 올리라고 한다. 세자는 오늘은 영빈 이 씨가 중전이라며 어머니의 환갑을 슬픔과 기쁨의 복잡한 기분으로 축하한다.  

노론 김상로(이대연)는 나경언을 사주하여 세자의 여러 가지 비행들을 거짓으로 영조에게 고한다. 세자를 옹호하는 신하들은 모함이라며 배후를 조사할 것을 요청하지만 세자를 폐위를 고민하던 영조는 신하들과 세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조는 세자에게 존재 자체가 역모라는 폭언을 한 뒤 금천교에서 대기하라는 명을 내렸고, 늦게까지 금천교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던 세자는 영조가 나타나지 않자 영조를 죽이려고 자객을 이끌고 경희궁을 향한다. 

영조는 세자에게 존재 자체가 역모라는 폭언을 한 뒤 금천교에서 대기하라는 명을 내렸고, 늦게까지 금천교 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던 세자는 영조가 나타나지 않자 영조를 죽이려고 자객을 이끌고 경희궁을 향합니다.

경희궁의 영조가 있는 전각에 도착한 세자는 방 안에서 영조와 세손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영조에게 말하는 세손의 총명함을 본 세자는 영조를 죽여 역적이 되면 세손까지 역적으로 몰릴 수 있기에 역모를 포기한다 

 

일곱째 날
기력이 다한 사도세자는 생사를 오가는 상태가 되어있었고 영조는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와 처음으로 진실된 대화를 나눈다. 영조와 세자는 그동안 둘 사이에 쌓인 오해와 생각들 그리고 왕의 권력과 대신들의 관계 등 복잡한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비극적인 두 사람의 관계를 슬퍼한다 

여덟째 날
세자의 장례가 치러지고 영조는 세자의 신원을 회복시킨 후 '생각할 사', '슬퍼할 도' 사도라는 시호를 내려 준다. 
14년 뒤 임오화변이 발생한 지 어느덧 14년. 영조가 승하한 1776년 마침내 정조는 보위에 오르게 된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을 참배하며 미처 그때 드리지 못했던 물 한 잔을 드리고 오열한다. 혜경궁 홍 씨 역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정조는 혜경궁 홍 씨의 생일날 아버지가 그린 청룡 부채를 들고 사도세자를 추모한다. 

 

2. 관전 포인트

 

영화는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복잡한 감정과 갈등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두 사람은 임금과 세자라는 위치 때문에 서로의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지만, 기록에 남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의 내면을 상상력으로 그려내, 좀 더 사실보다 좀 더 극적인 부분들이 있었을 것이다.

영조가 아들에게 자결을 명령한 이유와 사도세자의 심정을 추측하며,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영조와 사도세자뿐만 아니라, 세손과의 관계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영조는 손자를 보며 희망을 품지만, 세자는 아버지의 기대와 압박 속에서 미쳐간다.

 

 

3. 느낀점

영조는 아들을 사랑했지만, 동시에 왕으로서 냉정하게 대해야 했고,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기대와 부담 속에서 점점 무너져 갔다.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쌓인 오해가 해결되지 못하고, 극단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과정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특히 영화 후반부,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와 영조가 처음으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그토록 소통하지 못했던 부자의 관계가 너무 늦게 회복된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이 영화는 조선 시대 왕실 이야기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부모는 자식을 향한 기대와 사랑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대가 너무 과하면 결국 자식을 옭아매는 굴레가 될 수도 있다. 오늘날에도 부모의 기대를 맞추려다 자신을 잃어가는 자녀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비극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결국 사도세자가 죽지 않으면 왕권이 흔들리는 정치적 상황이 만들어졌고, 영조는 결국 ‘아버지’가 아닌 ‘왕’으로서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은 절대 권력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권력이 가족보다 우선될 때 얼마나 잔인한 결말이 나올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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